펫로스 증후군

제목상실의 현실을 살아내는 과정: 펫로스 증후군과 ‘동화(Assimilation)’2025-05-22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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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을 잃은 후 처음 며칠, 그리고 몇 주가 흐른 뒤, 우리는 차츰 그 상실이 남긴 공백을 체감하게 됩니다. ‘정말 이 아이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마음속을 메아리칩니다. 초반의 충격과 회피, 혹은 분노로 자신을 방어하던 감정이 서서히 약해지면, 그때부터 비로소 사랑했던 존재가 더 이상 곁에 없다는 엄연한 현실을 일상 곳곳에서 마주하게 됩니다. 

매일 아침 자동으로 준비하던 사료, 저녁 산책 시간에 꺼내 들던 목줄, 그리고 밤마다 나란히 누웠던 자리가 텅 비어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일상의 빈칸이 아니라 삶의 구조가 바뀌는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이 과정은 펫로스 증후군의 핵심적인 정서 반응이기도 하며, 이는 단지 동물의 죽음이 아닌 관계의 상실로 인한 깊은 애도이자 상실 반응입니다.

감정의 밀물과 썰물: 무력감, 죄책감, 그리고 회복을 향한 흔들림

특히 반려동물이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경우, 슬픔과 안도감이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혹시 내가 그만 놓아주기를 원했던 건 아닐까?”

안락사 결정을 너무 빨리 내린 건 아니었을까?”

이러한 내면의 질문은 펫로스 증후군에서 자주 나타나는 죄책감과 깊은 무력감으로 이어집니다. 심리학적으로도 이는 양가감정(ambivalence)’의 일환이며, 애정이 깊었던 만큼 이별의 감정 또한 복합적으로 드러납니다.

슬픔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 우리 곁에 머물며, 집중력 저하, 수면 장애, 식욕 변화, 일상에 대한 흥미 상실 등 신체적·정서적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일부 보호자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심장 질환이나 면역 저하를 경험하기도 하며, 이는 사별 이후 건강 리스크로도 학술적으로 보고되어 있습니다. 고통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이러한 시기에는, 단순한 위로 이상의 정서적 지지와 회복 자원이 절실합니다.

무의식 속 재결합의 소망: 그 아이가 여전히 곁에 있는 듯한 감각

많은 보호자들이 밤잠을 설치며 반려동물이 꿈에 나오는 경험을 하거나, 익숙한 소리를 듣고 그 아이가 돌아온 줄 알고 문을 여는 등의 침투적 이미지(intrusive image)’를 경험합니다. 이는 비정상이 아니라, 오히려 그 존재가 우리 삶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려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심리적 반응입니다.

새벽에 반려묘의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잠에서 깼어요. 분명히 저 쪽 방에서 걸어오는 소리였죠. 하지만 조용했고, 다시 눈물이 났어요.”

김 모 씨, 38, 고양이와 14년을 함께한 보호자

이런 경험은 때로 위안이 되기도 하고, 때로 다시 슬픔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이 회복을 향한 통과의례처럼 작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동화(Assimilation): 잃은 존재를 안고 살아가는 일

동화란 상실의 현실을 완전히 수용하고 내면화해, 자신의 삶 속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고인의 존재를 통합해 나가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반려동물을 잃은 많은 보호자들은 이 단계를 통해 슬픔의 무게를 조금씩 나눌 수 있는 방식으로 변화시켜 갑니다.

이 과정에서 슬픔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루는 방식이 바뀌는 것입니다. 반려동물의 장난감을 버리지 못해 그대로 두거나, 사진첩을 반복해서 들춰보거나, 혹은 그 아이의 이름으로 기부를 하는 일 등은 모두 동화의 한 방식입니다.

제 강아지가 쓰던 담요를 세탁해서 가방 안에 넣어 다녀요. 그 아이가 늘 저와 함께 있는 느낌이 들거든요.”

한 보호자의 이야기

회복의 실마리: 상실을 살아낸다는 것

펫로스 증후군에서 회복은 고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 상실의 고통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내적 자원을 찾고, 삶의 방식과 감정의 균형을 조절해 가는 능력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슬픔은 그 자체로 비정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너무 오랫동안 깊은 슬픔에 갇혀 일상 기능에 지장을 받거나 건강이 악화될 경우, 전문가의 상담을 통해 감정 조절, 의미 부여, 자기 돌봄의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여정이 결코 혼자만의 몫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당신은 왜 그렇게 힘든가요?”

그건 아마도, 그만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잊는 것이 아니라 다시 품는 방식으로 남는 법입니다.

 


반려동물과의 이별은 단지 생명의 끝이 아니라, 함께했던 삶의 방식과 정서적 연결의 상실이기도 합니다. 그 상실은 단순한 죽음의 인정을 넘어서, 매일의 루틴, 감정의 교류, 존재의 의미까지 흔들어 놓습니다. 펫로스 증후군의 회복 과정 중 마지막에 해당하는 수용(Accommodation)’은 이러한 상실의 현실과 감정을 점차 받아들이며 삶을 재구성해가는 단계입니다.

지금 내 인생은 어떤가요?”

수용의 단계에 접어들면, 보호자는 반려동물이 없는 현실 속에서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여전히 마음속 깊은 곳에는 상실의 여운이 남아 있지만, 집중력과 에너지는 서서히 회복되며, 일상적 기능도 점차 정상 궤도로 돌아옵니다. 과거에는 너무 버거웠던 식사 준비나 외출, 대인관계 활동 등도 다시 가능해지며, 내면의 정서적 균형을 찾기 위한 느린 걸음의 회복 여정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 회복은 결코 직선적이지 않습니다. 슬픔은 파도처럼 다가오고, 회복은 두 걸음 나아가다 한 걸음 물러서기와 같은 불균형한 리듬으로 이루어집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문득 떠오른 기억 한 조각, 오래된 장난감 하나가 다시 눈물을 흐르게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회복이 실패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정서적으로 건강한 반응입니다.

상실을 잊는 것이 아니라, 삶에 통합하는 것

수용의 핵심은 고인이 된 반려동물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를 기억하면서도 현재의 삶과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전 반려동물이 쓰던 담요를 여전히 곁에 두거나, 그 이름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는 단절이 아닌 연결의 새로운 방식이며, 잃어버린 관계의 의미를 삶 속에 되살리는 과정입니다.

오랫동안 꺼내지 못했던 강아지의 목걸이를 드디어 열어봤어요. 예전엔 볼 용기가 없었는데, 이제는 그리움 속에서 미소가 나더라고요.”

보호자 윤○○, 55

이 시기의 정서적 흐름은 복잡하고 양가적입니다. 안정을 찾는 동시에 죄책감, 미련, 안도감이 교차하기도 하고, 때로는 미래를 향한 작은 계획이 불현듯 떠오르기도 합니다. “새 고양이를 입양해도 괜찮을까?” “그 아이를 잊는 건 아닐까?”와 같은 내면의 질문은 모두 자연스러운 심리적 과정이며, 이는 애도의 마지막 단계로 이끄는 성찰의 시간입니다.

수용은 끝이 아니라, 삶의 또 다른 방식

수용은 상실을 이겨낸 상태가 아니라, 상실을 품고 살아가는 새로운 방식의 시작입니다. 고인의 존재가 더 이상 아픔만이 아니라 따뜻한 기억과 연결될 수 있을 때,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는 회복의 증거이며, 반려동물이 남긴 사랑이 고통이 아닌 힘이 되는 순간입니다.

펫로스 증후군의 수용 단계에서 기억해야 할 점

슬픔이 사라졌다고 해서 사랑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다시 웃을 수 있는 능력이 회복되었다면, 그건 잊었기 때문이 아니라 치유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가 남긴 자리는 공허함이 아니라, 기억과 의미의 장소로 남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반려동물을 맞이하는 결정은 그 사랑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확장하고 이어가는 방식일 수 있습니다.

나는 정말로 아리와 함께 걷던 산책 장소 앞에서 안녕을 말해야 했어요. 그 장소는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아리 그 자체였기 때문이에요.”

○○, 57

반려동물을 향한 안녕도 이와 같습니다. 단순히 놓아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했던 시간의 의미를 스스로의 삶에 다시 새기는 것, 그것이 진정한 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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